2026년 9월 9일 : 103호

이 책이 지금
내가 내게 발각될 때
저는 한번 더 나가는 소설, 멈추지 않고 한마디를 더 하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혜령의 첫 소설집 <버섯 농장>을 좋아합니다. 출간 당시 성혜령 작가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지 않는, 관계 안쪽을 들추어보는 소설적인 눈을 갖게 된 계기'를 한국문학사랑 앱레터를 통해 여쭸는데요,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며 위로와 돌봄을 받은 경험, 그러면서 타인의 선의 이면을 한번 더 생각해보았던 경험에 대해 얘기해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 답이 또 좋아 성혜령의 소설집을 기다렸고, 이번 소설집에서 아픈 여자들의 이야기 <베인>을 만날 수 있어 또 반가웠습니다.
체호프는 '만약 1막에서 무대에 권총을 걸어두었다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그것이 발사되어야 한다.'라는 극작 원칙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성혜령의 소설은 서사의 진행자를 '너무 나대는 사람'으로 설정했다면 그 '나댐'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주인공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는데 기능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면 그 어려움이 무정한 선택까지 이어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꽉 맞물립니다. 조형적으로 잘 건설된 단편소설들이라 읽는 동안 쾌감이 대단했습니다.
+ 더 보기
저는 한번 더 나가는 소설, 멈추지 않고 한마디를 더 하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혜령의 첫 소설집 <버섯 농장>을 좋아합니다. 출간 당시 성혜령 작가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지 않는, 관계 안쪽을 들추어보는 소설적인 눈을 갖게 된 계기'를 한국문학사랑 앱레터를 통해 여쭸는데요,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며 위로와 돌봄을 받은 경험, 그러면서 타인의 선의 이면을 한번 더 생각해보았던 경험에 대해 얘기해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 답이 또 좋아 성혜령의 소설집을 기다렸고, 이번 소설집에서 아픈 여자들의 이야기 <베인>을 만날 수 있어 또 반가웠습니다.
체호프는 '만약 1막에서 무대에 권총을 걸어두었다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그것이 발사되어야 한다.'라는 극작 원칙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성혜령의 소설은 서사의 진행자를 '너무 나대는 사람'으로 설정했다면 그 '나댐'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주인공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는데 기능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면 그 어려움이 무정한 선택까지 이어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꽉 맞물립니다. 조형적으로 잘 건설된 단편소설들이라 읽는 동안 쾌감이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이야기들에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마디만 참았으면 되는데 그 한 마디를 하고 마는 나. 안 갔으면 될 것을 굳이 산을 오르는 나. 그만 파면 될 것을 굳이 한번 더 땅을 파본 나. 그런 '나'들이 카드게임을 합니다. 대부호 게임처럼 카드를 뒤집어 '혁명이다!' 외칠 수 있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도 발각될 내가 있고, 그 나를 발견하는 게 생각보다 속시원하다는 것을 성혜령의 소설을 읽으며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 접기
84쪽 : 나는 대부호를 할 때 만큼은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족들처럼, 함께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하며 웃는, 그럴듯한 가족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비록 우리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일찍 영영 모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는 가족 같았다. 그게 행운인지 저주인지, 흐름을 뒤바꾸어놓은 패인지 순조롭게 만든 패인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아르고스>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한겨레출판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수상소감 클립에서 소설을 접하게 되면서 연구하며 느꼈던 허한 마음에서 해방되었고 건강도 좋아졌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연구자가 소설 쓰기를 결심한 순간이 궁금합니다.
A :
결심의 순간이 극적이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어느 날 벼락처럼 온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면서 잘라낸 것들이 쌓여서 왔습니다. 논문은 잘라내는 글쓰기입니다. 결론에 복무하지 않는 관찰은 각주로 밀리고, 개념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폐기됩니다. 교육철학을 연구하면서 그렇게 버려온 것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잔여물이 요구하는 형식이 논문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입니다.
김해에 살면서 매일 보는 풍경도 한몫했습니다. 1500년 전의 고분과 24시간 도는 물류센터가 한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입니다. 이 풍경을 논문으로 쓰면 '기술과 유산의 갈등'이라는 개념이 되고, 개념이 되는 순간 풍경은 죽습니다. 죽지 않게 쓰는 방법이 소설밖에 없었습니다.
허한 마음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논문은 이해시키는 글이고 소설은 느끼게 하는 글인데, 저는 오랫동안 앞의 것만 해왔습니다. 잠을 빼앗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오히려 잠을 잘 자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우습습니다.
+ 더 보기
Q :
<아르고스>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한겨레출판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수상소감 클립에서 소설을 접하게 되면서 연구하며 느꼈던 허한 마음에서 해방되었고 건강도 좋아졌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연구자가 소설 쓰기를 결심한 순간이 궁금합니다.
A :
결심의 순간이 극적이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어느 날 벼락처럼 온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면서 잘라낸 것들이 쌓여서 왔습니다. 논문은 잘라내는 글쓰기입니다. 결론에 복무하지 않는 관찰은 각주로 밀리고, 개념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폐기됩니다. 교육철학을 연구하면서 그렇게 버려온 것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잔여물이 요구하는 형식이 논문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입니다.
김해에 살면서 매일 보는 풍경도 한몫했습니다. 1500년 전의 고분과 24시간 도는 물류센터가 한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입니다. 이 풍경을 논문으로 쓰면 '기술과 유산의 갈등'이라는 개념이 되고, 개념이 되는 순간 풍경은 죽습니다. 죽지 않게 쓰는 방법이 소설밖에 없었습니다.
허한 마음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논문은 이해시키는 글이고 소설은 느끼게 하는 글인데, 저는 오랫동안 앞의 것만 해왔습니다. 잠을 빼앗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오히려 잠을 잘 자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우습습니다.
Q :
<아르고스>는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스마트 물류센터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습니다. 작가께서도 김해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구자인데요, 아직 김해의 매력을 모를 외지인에게 이 지역을 소개한다면, 어떤 점을 알려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A :
김해의 매력은 병존에 있습니다. 흔히 가야의 고도(古都)로 알려져 있고 그것도 맞지만, 살아보면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은 다른 데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분군과 산업 단지, 물류 트럭, 이주 노동자들의 삶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한 화면에 들어와 있다는 것. 1500년 전에 잠든 사람들의 무덤 능선 너머로 24시간 돌아가는 불빛이 보입니다. 이 낙차가 김해를 관광지가 아니라 사유의 장소로 만듭니다. <아르고스>도 그 낙차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께는 해 질 무렵 대성동 고분군 능선을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봉긋한 무덤들 사이를 걷다 보면 이 도시가 죽은 자들의 잠 위에 세워져 있다는 감각이 옵니다. 그다음 국립김해박물관에 들르면 그 잠의 내용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내로 내려와 밥을 드시면 됩니다. 김해는 이주민이 많은 도시라 밥상의 국적이 다양합니다. 그 다양함도 이 도시의 현재형입니다.
Q :
소설가 '이승형'을 더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연구와 소설을 아울러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여쭙고 싶습니다.
A :
계획은 단순합니다. 연구를 계속하고, 소설을 계속 씁니다. 둘을 병행이라 부르지만 제게는 같은 질문의 두 형식에 가깝습니다. AI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으로 남는가. 연구로는 유학(儒學)의 언어를 빌려 묻고 있고, 소설로는 잠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로 물었습니다. 질문이 끝나지 않았으니 둘 다 이어질 겁니다.
다음 소설은 쓰고 있다기보다 관찰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아르고스>를 쓰면서 의도적으로 다음으로 미뤄둔 과제들이 있고, 자연스럽게 거기가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는 않으려 합니다. 논문을 읽고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자리가 저에게 맞는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으니, 그 자리에서 오래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 접기

한국문학 MD는 지금 
2024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이응 이응>이 수록된 김멜라의 신작 소설집입니다. 출판사는 이렇게 책을 소개합니다. 김멜라의 소설은 '굳센 사랑의 손길로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흩뜨리며 단단히 매여 있던 우리 안의 매듭을 끄른다. 그 자리에 능청맞은 로맨스,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살피는 섬세함 그리고 마음을 헤집고 마는 애틋함'을 수놓는다. 능청이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칩니다. 김멜라의 최근작에서 사랑은 순정하고 절대적이면서도 다감한 무엇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보는 자리를 바꾸면 이야기가 바뀝니다. 지하철을 채운 '잡귀'의 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 김멜라의 소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계를 흐리고 뒤집어놓습니다. 전작 <리듬 난바다>를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함께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출판사는 지금 : 다이브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을 처음 발견한 건, 유난히 원고가 읽히지 않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재밌는 거 뭐 없나?’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이런 키워드와 마주쳤습니다.
‘나폴리탄 괴담 레전드 작품’
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레전드’라는 말까지 붙었을까. 호기심에 작품을 읽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 기묘한 세계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 사적지가 이 작품 안에서는 기이한 이상현상의 무대가 됩니다. 촘촘한 고증 위에 쌓아 올린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에도 반했지만, 무엇보다 지침서와 보고서, 녹취록, 채팅 기록을 따라가며 독자가 직접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게 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미 충분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이 작품을 책으로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웹에서 읽던 이 이야기의 재미를 종이책에서는 좀 더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자. 책의 물성을 최대한 끌어올리자.’
만약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들이 보관하는 기밀 서류는 어떤 모습일까요?
+ 더 보기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을 처음 발견한 건, 유난히 원고가 읽히지 않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재밌는 거 뭐 없나?’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이런 키워드와 마주쳤습니다.
‘나폴리탄 괴담 레전드 작품’
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레전드’라는 말까지 붙었을까. 호기심에 작품을 읽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 기묘한 세계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 사적지가 이 작품 안에서는 기이한 이상현상의 무대가 됩니다. 촘촘한 고증 위에 쌓아 올린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에도 반했지만, 무엇보다 지침서와 보고서, 녹취록, 채팅 기록을 따라가며 독자가 직접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게 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미 충분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이 작품을 책으로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웹에서 읽던 이 이야기의 재미를 종이책에서는 좀 더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자. 책의 물성을 최대한 끌어올리자.’
만약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들이 보관하는 기밀 서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연구원의 로고를 만들고,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을 지침서에는 미색을 깔고 커피를 흘린 흔적과 핏자국, 스테이플러 자국 등을 남겼습니다. 각종 보고서와 기록물 역시 실제 기관에서 작성한 문서처럼 보이도록 서식을 디테일하게 구현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여러 서류를 한데 모아 편철하고, 마지막에는 커버로 책 전체를 밀봉하는 콘셉트로 패키징을 완성했습니다.
누군가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에서 외부로 흘러나온 기밀 서류철을 우연히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이제 독자 여러분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 부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시길 바랍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상 현장에서의 긴박한 탐사가 시작될 테니까요.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의 무사 생환을 기원합니다.
- 빅피시 출판사 허주현
- 접기

응답하는 시
전선에서 응답하는 시집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함께 소개해봅니다. 알라딘 북펀드로 독자의 응원을 얻어 출항하는 <응답의 시>는 한국에서 시 쓰는 47인이 팔레스타인을 위한, 팔레스타인을 향한 '응답'으로서 쓴 시를 엮었습니다.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에서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까지, 세계적인 시인부터 아직 첫 시집을 묶지 않은 시인들까지 모여 이름을 올렸는데요, 각자의 절실함이 와닿는 시집입니다.
한베평화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그 속에 뿌리내리는 인간의 양심을 ‘아카이브 시’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조명합니다. 송기원, 김형수, 나희덕 등이 1부에, 송경동, 김현아, 허은실 등이 2부에 참여했고 3부에 시민참여시를 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