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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600원, 19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펀딩 중 (마감 2026-10-06, 출간예정 2026-10-27)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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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인류 발상의 DNA를 탐험하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는 마법 같은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더 현명해져 있을 것이다.”
이레네 바예호(고전학자, 작가)

마르케스 이후 스페인-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거장이자
문학과 과학을 가로지르는 앎의 건축가
호르헤 볼피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어 올린
광대한 지식과 신묘한 발상, 노련한 입담의 향연

“신화, 종교, 화폐, 국가—이 모두가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 허구다.”
빅뱅에서 아포칼립스라는 영원한 어둠까지,
지구와 문명의 역사에 대한 가장 대담하고 신통한 재해석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교수, 『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추천
★ 세상 만물의 역사를 픽션이라는 프리즘으로 통과시킨 픽션의 빅 히스토리
★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지적 스릴러 같은 인문 교양서
★ 오직 알라딘 북펀드 참여자만을 위한 혜택: 김명남 번역가, 금정연 작가의 북토크 초대권

마르케스 이후 스페인-라틴아메리카 문단을 지배했던 마술적 사실주의의 거대한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 세대를 이끈 기수. 유럽에서 미국까지, 세계주의적 시각으로 작품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종횡무진 가로질러온 야심 만만한 소설가. 지금까지 30개 이상 언어권 독자를 사로잡아온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살아 있는 현재. 실존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세계적 베스트셀러 팩션 『클링조어를 찾아서』의 저자 호르헤 볼피. 과학사와 인간사, 허구와 실화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어온 이 작가가 이번에는 우리 인간의 가장 오래된 습관 ‘상상하기’와 ‘이야기 지어내기’에 렌즈를 들이댔다. 『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은 이런 방대한 기획의 탁월한 결실이다.

『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은 호르헤 볼피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품어왔던 꿈―하나의 주제를 역사 전체에 걸쳐 다루는 빅 히스토리 작업―의 실현이다. 구체적으로는 볼피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두 개의 화두, 즉 과학적 사유와 인간의 상상력이 정면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분투했다. 그는 인간이라는 종이 왜 유독 ‘지어낸 이야기’에 그토록 깊이 의존해왔는지를 묻는다. 신화와 종교, 화폐와 국가, 심지어 과학 이론까지—인류 문명을 지탱해온 거의 모든 체계가 사실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는 발상을 끝까지 밀어붙인 것. 입담 좋은 소설가답게 볼피는 이 발견을 딱딱한 논증이자 서류 정리식 서술이 아니라, 셰에라자드의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책은 빅뱅과 (인류를 포함한) 생물의 출현이라는 기원에 대한 허구에서 출발해,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와 구전신화, 문자와 종교, 소설과 영화, 그리고 오늘날의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이야기, 마지마지막으로 종말에 대한 허구적 예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간을 가로지른다. 그 사이사이에는 성서를 만든 이름 모를 편집자들, 역사를 재구성한 헤로도토스, 소설이라는 장르를 발명한 세르반테스, 허구를 과학의 언어로 번역한 아인슈타인, 넷플릭스 시리즈와 밈 유행까지—얼핏 무관해 보이는 인물과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 만나고 부딪힌다. 덕분에 그는 스페인어권에서 호르헤 볼피 특유의 박식함과 서사적 재능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한편,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독자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구조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점에 있다. 독자는 인류가 지어낸 ‘허구/이야기’의 역사를 읽어 나가면서,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이 책 역시 하나의 정교한 ‘지어낸’ 이야기임을 계속 상기하게 된다. ‘내가 배우고 믿어온 모든 것이 결국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였다’는 유쾌하고도 서늘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 동시에 이야기를 지어내는 저자의 솜씨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바빠진다. 책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역량은 내용 자체뿐 아니라 서술적 차원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위트와 아이러니를 잃지 않는 볼피의 문장은 지적 스릴러를 읽는 듯한 몰입감과 인류 문명 전체를 조망하는 지적 쾌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번역은 그동안 스페인어권 문학을 정확하고 유려한 한국어로 소개해온 엄지영 번역가가 맡아, 볼피 특유의 박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를 신중히 살려냈다. 또한 표지 디자인은 ‘세계에 관한 한 무엇이든 상상하는 인간’, ‘이야기의 역사’라는 책의 주제를 시각화해, 신화와 상상이 뒤섞인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출간에 맞춰 이 두툼한 책을 함께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북펀드 참여 독자들만을 위한 북토크도 마련했다. 김명남 번역가와 금정연 작가 두 사람의 진행으로 열릴 이번 자리는 호모 픽투스라는 인간 종의 세계 속으로 떠나는 설레는 여행의 첫 여정이 되어줄 것이다.




추천의 글

“인류 발상의 DNA를 탐험하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는 마법 같은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더 현명해져 있을 것이다.”
이레네 바예호(고전학자, 『갈대 속의 영원』 저자)

“호르헤 볼피의 정신에서 탄생한 위대한 작품.”
아구스틴 페르난데스 마요(스페인 물리학자, 소설가)

“호르헤 볼피의 문화적 지식, 명석함, 격렬한 문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렉스프레스(프랑스 주간지)

“한없이 즐거운 이야기이자 에세이. 나는 이 방대한 책을 단숨에 읽었다. 매혹적인 문학의 향기와 과학적 탐구의 활력이 책을 한없이 풍성하게 만든다.”
엘 코레오 데 부르고스(스페인 일간지)

“보르헤스적 야심을 품은 책. 과학과 철학, 예술과 문학을 넘나들며 태초부터 인간이 살아온, 허구라는 영토를 지도로 그려낸다. 볼피는 이 에세이를 통해 자신만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디 오브젝티브(스페인 일간지)

“이 두꺼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Bookish & Co.(쿠바 문예 웹진)

“인문학과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일관된 비전을 재구성하려는 야심 차고 의미심장한 인문주의적 시도. 이 책에서 볼피는 과학과 인문학을 다성적으로 연결한다.”
쿠아데르노스 이스파노아메리카노스(스페인 문예지)

책 속에서

「가짜 프롤로그」 일부 (11~22쪽)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을 꾸다 눈을 떠보니 나는 흉측하게 생긴 벌레로 변해 있다. 갑옷처럼 딱딱한 내 배는 아치 모양의 마디들로 나누어져 있고, 세 쌍의 다리가 허공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버둥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눈앞에 생생하고 분명하게 보이는 이 장면은 평소 내가 무심코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실감 난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공포는 기억의 산물일까? 아니면 환각이나 환상, 꿈이 빚어낸 결과일까? 만약 한순간 그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내가 여전히 그 허상 안에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매일 아침에 보는 것과 똑같은데, 오늘따라 눈 밑의 그늘만 유난히 짙어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벌레 같지는 않다. 벌레로 변한 내 모습은 거짓이고, 악몽의 잔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공포를 일으키기 가장 좋은 방법, 꿈속의 꿈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만약 우리가 그 꿈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곧장 다른 꿈으로, 그리고 또 다른 꿈으로 무한히 곤두박질치게 되지 않을까?
보르헤스는 이러한 전략을 여러 차례 이용했다. “시간은 갠지스강과 템스강을 꿈꾸었는데, 그것은 모두 물의 이름들이다.” 그는 『음모자들』(1985)에 수록된 시 「누군가 꿈을 꾼다」에서 이렇게 썼다. “시간은 율리시스가 이해하지 못했을 지도를 꿈꾸었다. 시간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를 꿈꾸었다. 시간은 알렉산더를 가로막았던 낙원의 벽을 꿈꾸었다. 시간은 바다와 눈물을 꿈꾸었다. 시간은 수정을 꿈꾸었다. 시간은 누군가가 자기를 꿈꾸는 꿈을 꾸었다.” 이제 내 손이 벌레의 다리로 변한 장면을 분석한다. 이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허구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꿈과 같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허구라는 말은 가장하거나 속인다는 뜻이 아닌 조각하거나 무언가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fingere에서 유래했다. 이는 도공이 그릇을 만들 때나 조각가가 비너스 상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이보다 더 적절한 어원이 있을까? 현실은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해 형태와 부피를 부여하는 점토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꿈속의 나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비교해보자. 전자가 거짓인 반면, 후자가 사실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 두 이미지 사이에 어떤 실질적인 차이가 느껴지는가? 아니, 나의 확신 말고는 어떤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만약 거울에 비친 게 진짜 내 얼굴로 보인다면, 그건 그것이 진짜 내 얼굴이라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미지도 그 자체로 진짜가 아니다. 이미지의 진실성 여부는 그것이 진실임을 내게 알려주는 일종의 라벨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누가 그 이미지에 포화지방 과다 섭취 경고 문구와 같은 그런 라벨을 붙이는 걸까?



나의 악몽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잠시 망설이던 나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책의 어느 면에서 그 악몽의 출처를 찾아낸다. 결국 그것은 내가 떠올린 생각이 아니다. 문제의 장면은 나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이다. 누군가가 그 장면을 내 안에 주입했는데, 나는 그것을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으로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와 관념은 포자나―이쯤 되면 이 비유도 그다지 독창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나의 뇌에 침투하면 끊임없이 증식하면서 갑자기 내가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결국 나는 허구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번식지인 셈이다. 상상력이 유독 풍부했던 성녀 데레사에게 상상력은 집 안의 미친 여자와 같았다. 상상력은 일단 작동하면 자기 길을 간다. 이런 식으로 변화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인간은 누멘, 무사이, 신들, 다이몬들, 두엔데들, 성령, 데카르트의 호문쿨루스 등을 만들어냈다. 물론 영감도 여기에 포함된다.



꿈에서 본 장면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불과 침대 가장자리 위로 내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벽지 무늬가, 왼쪽으로 화장실 문이 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울퉁불퉁한 천장과 전등의 그림자가 눈에 띈다. 그 너머에는 페르시아산 양탄자가 깔려 있다. 이런 공간이라면 몇 시간 동안이고 멍하니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부 장면 중 그 어느 것도 내가 보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먼저 이것, 그다음에 저것,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것…… 만약 꿈이나 삶의 몇몇 장면이 동시에 펼쳐져도 우리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떠올린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간이라는 낚싯바늘에 이미지들을 줄줄이 꿰는 것이다. 지금은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결국 그 길의 의미를 찾아낼 거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는 사건들―우리가 사건들에서 파악해낸 패턴들―의 순서를 정한다. 우리는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기계다.



만약 감각이 우리를 속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노력해왔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내 눈에서 뇌로 가는 정보보다 내 뇌에서 눈으로 흘러가는 정보가 더 많다. 나는 세계를 만들어내진 않지만, 색칠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세계를 채워 넣는다. 온 우주가 내 안에 담겨 있다. 바다와 하늘, 별들과 행성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이들까지 모두. 바깥에 있는 것은 영원히 나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손을 댈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을 허구로, 잔인하지만 내게는 금단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추방된 낙원이다. 나는 베개 밑에 가족사진을 숨겨놓은 죄수처럼 내 안에 세계를 간직한다. 그럼에도 나는 현실을 만지고, 관찰하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눈을 뜨면 그곳에 세계가 있고,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더 유동적이고 덧없는 또 다른 세계가 떠다닌다. 안과 밖. 그 어떤 경계도 이보다 더 또렷이 보이고, 이보다 더 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이원론은 내가 다른 것의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종교 또한 이와 같은 원칙을 따른다. 내가 이 몸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여기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 어떤 탈출구도 없다. 어쩌면 아우토 데 페, 즉 화형 선고가 마지막 남은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육신이 다 타버리고 나면 마침내 영혼이 해방될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이 세계,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다니는 이 공간조차도 결국은 서로 연결된 허구들의 집합체나 다름없다. 우리의 가족 관계, 사랑하는 이들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우리를 지배하는 질서, 우리가 배우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찾아낸 방법들,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허구라는 도구로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허구로, 다른 허구들과 관계를 맺고 심지어 그런 허구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허구적 공간 속에서 살고 일하고 움직인다. 우리는 허구에 유혹당하고 이끌리고 통제될 뿐만 아니라, 허구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우리는 허구를 갈망하고, 허구를 꿈꾼다. 우리는 허구를 위해 투쟁하고, 때로는 허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우리는 허구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고 허구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희망에 가득 차서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 허구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포유류, 영장류, 초기 인류를 거쳐 마침내 인간에 이르는, 생명체를 둘러싼 허구의 기원에서부터 우리가 여전히 전화라고 부르는 휴대용 컴퓨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허구 이야기를 탐욕스럽게 소비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적인 여정이다. 이 기나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상상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우리가 그것이 지닌 힘을 깨달았을 때 어떤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건국 신화부터 기성 종교에 이르기까지, 또 초기 부족사회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집단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허구들, 그리고 침략과 전쟁, 학살을 정당화해온 허구들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가족, 우정, 시민, 성 또는 사랑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준 허구들과 마술, 종교, 점성술, 철학, 과학 등 우주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해준 허구들도 함께 탐색할 것이다. 신화, 시와 노래, 회화, 그림, 조각, 연극과 무용 작품, 이야기와 소설, 오페라와 발레, 영화와 시리즈, 만화와 비디오게임, 멀티미디어 공연과 퍼포먼스, 또 타인의 마음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고록과 서간집, 자서전, 소셜 네트워크, 매일같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사이버 아바타, 그리고 우리의 공적 삶을 은폐, 왜곡하는 허튼소리―가짜 뉴스―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의 허구를 찾아 떠나는 그 여정 또한, 미리 말해두지만, 허구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침묵이 음악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기 위해 나는 우리의 의식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화살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구가 반드시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인위적으로 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대기적 순서는―이야기가 종종 불안정한 전자(電子)처럼 불규칙하게 앞뒤로 튀더라도―허구가 어떻게 변화되고 변형되어왔는지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을 꾸다 눈을 떠보니 내가 다시 흉측하게 생긴 벌레로 변해 있다.
그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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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하느님의 형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일부 (133~135쪽)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당신은 울창한 정원 속에 있다. 그 주변으로는 삼나무와 아카시아, 치자나무와 튤립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덤불 사이로 사슴 한 쌍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코끼리와 하마의 등이, 그리고 조금 더 멀리에는 야생마, 늑대와 코요테, 하이에나와 기린 무리가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당신 옆에서는 작은 염소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놀고, 토끼들이 주변을 뛰어다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하이에나와 도마뱀의 모습도 눈에 띈다. 당신이 재스민과 오렌지 향기를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동안, 당신의 맨살은 들판을 적시는 샘물가의 풀잎에 스쳐 촉촉하게 젖어든다. 분명 당신의 동반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새들과 노닥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짐승 가운데 하나인 뱀이 노란 눈동자로 당신을 빤히 쳐다본다.
“정말로 엘로힘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야?” 뱀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어.” 당신은 뱀의 말을 바로잡으며 말한다. “하지만 엘로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도 손대지도 말라고 하셨어.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러자 당신의 소중한 친구인 뱀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쳐다본다. “무슨 소리야! 절대 죽을 리 없어.” 뱀이 나무라듯이 말한다. “엘로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신들처럼 눈이 뜨여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거라고.”
당신은 그 멋진 나무를 잠시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눈이 뜨이게 된다면 열매를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뭇가지에 다가가 탐스러운 둥근 열매 하나를 어루만져본다. 한입 베어 문 순간, 당신의 몸은 마침내 온전한 몸으로 보인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당신은 이 놀라운 경험을 당신의 동반자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곁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신은 이 열매를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댈 것이다.

(이 하느님이라는 분은 참으로 기이한 존재다.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불리고, 히브리어로는 YHWH라 쓰이며, 고대 다신교를 떠올리게 하는 복수형 단어인 엘로힘으로도 알려진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고 자처하면서도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하고 질투심 많고 변덕스러우며, 원한에 차 있고 잔혹하고 변덕스럽고 요구하는 것이 많고, 교활하고 음흉한 모습을 보이며, 어쩌다 너그러울 때도 있지만 다정한 적은 거의 없는 그런 존재다. 결국 그는 여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나중에는 전 세계와 관계를―오늘날 기준으로 보자면 유해한 관계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맺어온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는 고대의 어떤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의 앞에 서면 무신론자들조차 주눅이 들 정도다. 결론적으로 신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전염성이 강하고―또 위험한―허구다.)

차례

가짜 프롤로그

대화 1: 펠리체와 벌레가 마주 앉아 현실과 허구에 대해 토론하다

첫 번째 이야기: 허구의 기원
1 우주가 어떻게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좌우되는지에 대하여: 빅뱅 이론과 관점
2 단백질로 철학하는 방법에 대하여: 진화와 생명의 기원
3 좀비에게 고백하는 방법에 대하여: 의식과 자기의식
4 호랑이 유령들과 싸우는 방법에 대하여: 언어, 상징, 권력
5 친구들을 속이는 방법에 대하여: 첫 번째 거짓말과 첫 번째 허구

대화 2: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에 대해 궁리하다

두 번째 책: 기원에 대한 허구
1 구름, 밤나무, 도마뱀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애니미즘, 신화, 집단 무의식
2 식인종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하여: 인간이라는 늑대와 선량한 야만인
3 아버지를 죽이고 짐승들을 달래는 방법에 대하여: 『에누마 엘리시』,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4 지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하느님의 형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이집트 사자의 서』와 『창세기』
5 하늘을 채우는 방법에 대하여: 『신통기』, 『마하바라타』, 『포폴 부』

대화 3: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와 광기 사이의 혼란스러운 관계에 휩쓸리다

세 번째 책: 미래의 발명
1 수수께끼를 짜고 미래를 더듬어보는 방법에 대하여: 신탁과 점술
2 분노하고 방황하는 방식에 대하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3 모범적인 가족에게서 도망치는 방법에 대하여: 아티카 비극
4 항상 옳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
5 사람, 가족, 제국을 발명하는 방법에 대하여: 로마법

대화 4: 펠리체와 벌레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상한 허구에 대해 논하다

네 번째 책: 죄와 구원의 허구
1 전염병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하여: 『신약성서』와 『고백록』
2 자신에게 맞서는 방법에 대하여: 중세의 상상력
3 천사와 진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쿠란, 『천일야화』, 『루바이야트』
4 천국과 지옥 사이를 방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신학대전』과 『신곡』
5 종이 사회를 그려내는 방법에 대하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대화 5: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가 어떻게 아름다워지는지 논하다

다섯 번째 책: 인간의 발명
1 파리를 그려 날아가게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원근법과 르네상스 예술
2 지구 반대편에서 난파하는 방법에 대하여: 아메리카의 재창조
3 한 왕국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방법에 대하여: 『유토피아』, 『우신예찬』, 『군주론』,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4 창조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에 대하여: 과학의 출현
5 제정신이 되는 방법과 미치광이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돈키호테』, 『리어 왕』, 근대적 자아

대화 6: 펠리체와 벌레가 역사와 과학의 미로 속으로 깊이 빠져들다

여섯 번째 책: 이성의 괴물
1 유령의 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하여: 몬테베르디에서 모차르트까지
2 텅 빈 것을 채우고 가득 찬 것을 비우는 방법에 대하여: 후아나 수녀와 바로크적 상상력
3 자아의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에 대하여: 데카르트에서 계몽주의까지
4 천문학이라는 시계를 분해하는 방법에 대하여: 『프린피키아』, 『자연의 체계』, 『꿀벌의 우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5 이웃을 참수하는 방법에 대하여: 프랑스혁명과 인권

대화 7: 펠리체와 벌레는 정체성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일곱 번째 책: 로맨틱 멜로드라마
1 나를 내려놓고 우리의 먼지를 털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괴테에서 랭보까지
2 절대자를 어루만지는 방법에 대하여: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3 독이 든 유산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공산당 선언』, 『자본』, 『종의 기원』
4 축소판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브론테 자매, 발자크와 졸라,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5 깨진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알아보는 방법에 대하여: 빅토리아시대와 세기말

대화 8: 펠리체와 벌레가 사랑을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인다

여덟 번째 책: 종말의 허구들
1 빛으로 변하는 방법에 대하여: 시청각의 제국
2 현실을 무너뜨리되, 그 과정에서 죽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그리고 마술적 리얼리즘
3 자신만의 감옥을 짓는 방법에 대하여: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4 전체를 추측하는 방법에 대하여: 표준 모형, 게놈, 인터넷, 인공지능
5 지구를 리셋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티, 생태주의

마지막 대화: 펠리체가 벌레에게 진실에 대해 가르치다

가짜 에필로그

허구의 연대기
감사의 말
도판 출처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 호르헤 볼피 (Jorge Volpi, 1968~ )

“호르헤 볼피는 나보다 나은 유일한 작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드디어 내 후계자를 찾았다. 이제 호르헤 볼피 덕분에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작가)

“인간 호기심의 금고를 전부 열 수 있는 열쇠의 소유자.”
—에드먼드 화이트(미국 작가)

멕시코-스페인 이중 국적 작가.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역사와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멕시코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단편소설집 『플루트, 오보에, 첼로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1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6년에 학부 시절 만난 동료 문인들과 함께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물결을 알리는 <크랙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데뷔 후 지금까지 역사, 철학, 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바탕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 『클링조어를 찾아서』, 『광기의 종말』, 『그 땅은 아니리라. 잿더미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20세기 3부작>과 『짙은 침묵에도 불구하고』, 『무덤의 평화』, 『우울한 기질』, 『아포칼립스 게임』 등의 소설, 『상상력과 권력: 1968년의 지성사』, 『전쟁과 언어: 1994년의 지성사』, 『크랙: 사용 설명서』, 『멕시코: 모든 시민이 자기 조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혹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 『전염성 있는 거짓말들』, 『볼리바르의 불면』, 『외계인의 침공: 거짓된 이민 문제』 등의 인문 에세이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91년 플루랄에세이상, 1999년 비블리오테카브레베상, 2000년 그린자네카부르상, 2008년 데바테카사데아메리카에세이상, 2012년 플라네타카사데아메리카상, 2018년 알파과라소설상 등 수많은 상을 받으며 오늘날 스페인어권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은 빅뱅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세상의 역사를 픽션이라는 프리즘으로 통과시키는, 호르헤 볼피의 야심 찬 인문 에세이다. 볼피는 과학-역사-철학-문학을 횡단하며, 인간이 세상이라는 표면과 내면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그 의미를 창조해왔는지 탐구한다. 우주의 탄생부터 문명의 발전, 지금 우리 시대의 갈등, 그리고 아포칼립스에 대한 예견까지, 이 책은 픽션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증명한다. 2024년 에스타도 크리티코 에세이상을 수상한 책으로, 스페인어권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문화권 지식인들로부터 “인간 호기심의 모든 문을 여는 열쇠”라는 찬사를 받았다.


옮긴이 | 엄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스페인 콤플루텐세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소설을 전공했다. 『영혼의 미로』,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말라 온다』, 『인공호흡』, 『7인의 미치광이』,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신을 죽인 여자들』,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도서 정보



도서명: <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 - 인간의 문명을 만든 픽션의 역사>

- 분류:
국내도서 > 인문 > 교양 인문학
국내도서 > 인문 > 인문 에세이
국내도서 > 인문 > 문화/문화이론 > 문명/문명사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문명/문화사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사회사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사

- 지은이: 호르헤 볼피
- 옮긴이: 엄지영
- 펴낸곳: 엘리
- 판형: 약 1,048쪽 / 140*220mm / 양장
- 출간 예정일: 2026년 10월 27일
- 정가: 4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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