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OO대학병원 장례식장.
고인 서하진
상주 김철환
어느 장례식장이 그렇듯 이곳 또한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른 점이라면 장례식장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팬들과, 먹잇감을 노리듯 드나드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취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고인환 씨!! 평소 서하진 씨랑 각별한 관계였나요? 혹시 서하진 씨가 평소에 힘들다는 얘기 한 적 있나요?!!”
“대표님!! 지금 팬들 사이에서 소속사 대처가 너무 안일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야!!! 우리 오빠 살려내!! 아아악!!!”
“허어엉! 오빠아!!”
“안녕하십니까? 지금 이곳은 그룹 비원의 멤버인 서하진 씨의 장례식장 앞입니다.
갑작스러운 서하진 씨의 죽음으로 이곳은 관계자들과 팬들로 복잡한 상황인데요.
몇 개월 전 가족의 비극으로 서하진 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건 주변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서하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상황에서 소속사의 적절한 대처가 있었는지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아직 서하진 씨의 소속사에서는 간단한 입장만 밝힌 상태로 제대로 된 답변이 없어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앞서 경찰은 서하진 씨의 집에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재 나온 여러 정황상 자살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유서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게 없는데요.
새로운 내용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뉴스 김호진이었습니다.”
<장례식장 안>
“흐윽…. 진짜 너무하네. 씨발.”
“환아. 목소리 크다.”
“아니, 형! 하진이 저 불쌍한 놈 이렇게 가는데…. 흐윽…. 저기서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저러는 기자 새끼들이 정상이야?!”
“알아. 네 맘이 어떤지…. 근데 괜히 하진이 가는 길에 우리까지 시끄럽게 하지 말자. 네 말처럼 지금 기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맘속 이야기는 나중에 숙소 가서 하고. 하아…. 나도 너처럼 속이 터질 것 같은데 참고 있는 거야.”
그룹 비원의 리더 재원이 환이를 다독였다.
멤버 하진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동생들뿐 아니라 자신 역시 큰 충격을 받았지만, 리더로서 하진의 마지막 가는 길만은 구설수 없이 보내주고 싶어 무너지는 마음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하진이 누나와 매형, 조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 몇 개월 동안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멤버들 모두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서로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모자랐었나 보다.
여린 동생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으니….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옥죄었지만, 떠나간 동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고통스러운 사실을 자신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0대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아이돌로 데뷔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정상급 아이돌 7년 차가 되었다.
같이한 세월만 10년이었다.
그런 가족이 곁을 떠났는데…. 밖에서는 여전히 하진을 사랑했던 사람들 외에도, 가십거리 뉴스만 찾는 기자들과 개인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진을 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멤버 모두 리더의 말에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흐느낄 뿐이었다.
같은 연예계 동료부터 소속사 식구들과 방송국 관계자 등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하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문을 왔다.
멤버들은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매니저 철환의 옆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얘들아. 여기 내가 있을 테니 너희는 가서 좀 쉬어. 오늘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잖아. 너네까지 쓰러지면 진짜 큰일 난다.”
비원의 매니저이자 실장인 철환이 멤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아니야. 형…. 우리 그냥 있을래.”
“응. 하진이…. 흑…. 외로움 많이 타는데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줄래…. 허어엉.”
로이가 말하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로이의 울음에 다른 멤버들도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습에 철환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이렇게 미칠 것 같은데 멤버들은 오죽할까 싶으면서도, 흐느끼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자칫 여기서 누구라도 한 명 쓰러질까 봐 걱정이었다.
철환은 결국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찾았다.
손님들에게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있는 뒷모습을 발견하고, 철환이 소리 내어 불렀다.
“도영아.”
“네. 실장님.”
도영이라 불린 청년이 철환에게 얼른 다가왔다.
그는 그룹 비원의 로드 매니저였다.
“도영아, 여기 애들 저쪽 방에 좀 데리고 가서 쉬게 해라. 먹을 것도 좀 챙겨주고….”
“네 알겠습니다”
도영이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형들, 들어가서 좀 쉬세요. 여기는 제가 실장님이랑 같이 있을게요.”
도영이 멤버들의 팔을 부축해서 한 명 한 명 일으켜 세웠다.
“아니야. 도영아. 우리 그냥 있을게.”
멤버들은 도영의 손을 뿌리쳤다.
“형들! 형들 이러고 있는 거 보면 하진이 형이 슬퍼할 거예요. 가서 눈 좀 붙이고 뭐라도 먹고 힘을 좀 내요. 그래야 남은 기간 견딜 거 아니에요. 이러다 형들까지 쓰러지면 우리 착한 하진이 형. 맘 불편해서 좋은 곳으로 못 가요.”
도영의 말에 멤버들이 결국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리고 장례식장 옆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도영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챙겨서 따라 들어갔다.
“이것 좀 드세요. 밥은 목에 안 넘어갈 것 같아서 과일이랑 마실 것만 좀 가져왔어요. 이거라도 먹고 버텨야죠.”
“고맙다. 도영아.”
“이게 제 일인데요. 뭘.”
“너도 하진이 많이 따랐잖아. 하진이도 너 많이 챙겼고. 너도 우리처럼 힘들 텐데…. 여기 앉아서 좀 쉬어.”
재원이 두유에 빨대를 꽂아 도영에게 내밀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들뿐만 아니라 도영도 아무것도 안 먹고 있었다.
두유를 말없이 받아든 도영은 딱히 배고픔을 느끼지는 않았으나, 재원의 마음을 생각해서 억지로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이 먹어야 멤버들도 먹을 걸 알아서였다.
도영의 생각처럼 멤버들도 그제야 하나둘씩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한 입도 채 삼키지 못한 채 흘러내리는 눈물에 음식을 다시 내려놓았다.
이렇게 입에 음식을 넣는 것 자체도 왠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참을 울다, 다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도영은 잠든 멤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끈 채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실장인 철환에게 다가갔다.
“애들은?”
“울다 잠들었어요. 먹지는 못하고요.”
“하아. 그래. 그래도 잠이라도 들었으니 다행이다. 너는 괜찮아?”
“네…. 견뎌야죠.”
애써 담담하게 말하는 도영의 모습에 철환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제 1년이 좀 안 된 로드 매니저인 도영은 고아였다.
그래서인지 눈치가 빨랐고 일도 금방 배웠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다들 마음에 들어 했다.
그룹 비원의 멤버들이야 워낙 인성이 좋아서 케어하는 게 다른 그룹보다 수월하기는 하지만 원래 이쪽 계열이 이직률이 높았다.
거기다 좋은 사람을 찾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일도 잘하고 눈치도 빠른 도영이 들어와서 멤버들뿐 아니라 소속사에서도 계속 함께하길 바랄 정도였다.
더구나 도영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나서는 비원 멤버들 모두 그를 가족처럼 살뜰히 챙겼다.
특히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누나 손에 큰 하진은 도영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도영 역시 멤버들을 모두 좋아했지만, 특히 하진을 가장 잘 따랐었고….
그러던 10개월 전쯤.
하진의 누나 가족이 탄 차가 역주행한 트럭과 충돌해서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진의 누나, 매형, 3살 된 조카까지.
그 사고 소식을 듣고 하진은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도 사고 소식을 떠올리곤 계속 혼절하기를 반복하였다.
힘겹게 누나 가족의 장례를 치렀지만, 그 후 하진은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심한 우울증에 멤버들과 소속사 식구들이 달라붙어 보살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도영 역시 친형처럼 따르는 하진을 어떻게든 돕고 싶어 계속 옆에 붙어 있었다.
도영과 사람들의 정성에 결국 하진도 어느 정도 호전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다들 안도했지만, 도영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계속 붙어 있었다.
“도영아. 나 이제 많이 좋아졌어. 그러니까 이제 너도 네 일 해.”
“형. 제 일이 형 케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 네가 매니저인 거. 근데 이렇게 24시간 내 옆에 붙어 있으면 네 생활이 없잖아. 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도 집에 가서 편하게 쉬어. 나 때문에 요즘 계속 힘들었잖아. 넌 괜찮다고 해도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하진의 계속된 설득에 도영은 어쩔 수 없이 실장인 철환에게 허락을 받고 잠시 집에 돌아기로 했다.
마침 다른 멤버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서 그 후에 가겠다고 했지만, 하진이 계속 괜찮다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쫓겨나다시피 숙소를 나왔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도영이 나오고 다른 멤버들이 숙소에 돌아오기 전.
그 30분 사이에 하진이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숙소에 돌아온 멤버들이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 급하게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손을 쓰기엔 늦은 상태였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도영이 허겁지겁 병원으로 뛰어갔지만, 그를 맞이한 건 싸늘하게 식은 하진의 모습이었다.
“아…아니야. 아니죠? 형!!! 형이 왜 여기 이러고 있어요? 나보고 편히 쉬고 오라면서요. 근데 왜 형이 여기 누워 있는 건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응? 형 내가 잘못했어요. 흑…. 내가 집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그냥 형 옆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 아아아악!! 허어어엉! 형 제발 눈 좀 떠요. 혀엉!!”
도영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오열하였다.
미리 와있던 소속사 식구들이 그런 그를 달래면서 일으켜 세웠다.
“도영아. 네 잘못 아냐. 흐윽…. 흑. 우리가 다 너무 안일했다. 그러니까 네가 자책할 필요 없어.”
그 이후 슬픔에 빠져 있는 멤버들을 챙겨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하진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도영도 처음보다는 많이 안정되었지만, 그 속은 말이 아니었다.
도영이 연기에 관심 있단 걸 알고 일부러 자신의 촬영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던, 정말 친형 같은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실감은 도영이 지금껏 살면서 처음 겪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진의 마지막 가는 길.
제대로 배웅하기 위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며칠 후, 하진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누나 가족과 함께 납골당 한쪽에 안치되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하진의 사진을 보며 모두 눈물을 흘리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 돌아간 후에도 도영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창 저편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하진의 사진과 그 옆에 있는 하진의 가족사진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모두 마지막 길 많이 아팠을 텐데, 사진 속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형. 누나 가족 옆에서 편히 쉬어요. 그곳에 가족 모두 모였으니 이제 외롭지 않겠네요. 그러니까 이제 형도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잘 지내요. 근데 나는 형이 너무 그리울 것 같네요. 가끔 너무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씩 들를게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도영은 한참 자리를 지키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힘들지만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게 남은 사람의 도리였다.
하진이 마지막 남긴 말도 그것이었고.
장례식 도중 잠시 하진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에 들렀을 때, 하진의 방 책상 위에 있는 유서를 발견했다.
[미안해. 다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해.
다들 나 때문에 힘들고 애썼던 거 알고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해.
멤버 형들, 철환이 형, 도영이, 소속사 식구들. 그리고 팬분들.
모두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나도 어떻게든 견디려고 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
결국 이렇게 못난 선택을 하는 날 용서하지 마.
나 때문에 아파하지 말고, 내 기억은 금방 잊고 행복하게 살아줘.
이렇게 떠나면서 하는 말이라 이해 못 할 수 있겠지만, 다들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가족들 옆에서 이제 좀 편히 쉬고 싶어.
매일 매일 숨 쉬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이제 쉬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어.
그래. 난 이제 쉬려는 거야.
그러니 나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그런 거 갖지 말고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아.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모습이 이런 거라 정말 미안해.
안녕.]
하진의 유서를 한자 한자 힘겹게 읽던 도영은 결국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그 이후 유서를 본 사람들 모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하진의 바람대로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하늘에서 보고 있을 하진이 편하게 쉴 수 있을 테니까.
도영도 그래서 더더욱 마음을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하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도영이 납골당에서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도영이 비틀거렸다.
‘어…. 왜 이렇게 어지럽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비틀거리던 도영이 결국 쓰러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도영의 기억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