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습관적으로 지도를 펼치면 북쪽을 위로, 남쪽을 아래로 둔다. 나침반의 바늘은 당연하다는 듯 북쪽을 가리키고,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한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은 인류의 역사와 정치를 나누는 암묵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된 듯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 구 형태의 지구에, 과연 ‘위’와 ‘아래’, ‘시작’과 ‘끝’이라는 절대적 방향이 존재하는가. 베일리 기포드상 수상 작가이자 20년 넘게 지도사를 연구해 온 세계적 권위자 제리 브로턴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방향’이라는 개념의 허구와 그 뒤에 숨겨진 권력의 역사를 파헤친다.
동서남북 체계가 확립되기 전, 인류는 시대와 문명에 따라 세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렬했었다. 이에 브로턴은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종교의 제례 의식부터 제국주의,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의 패권까지 방위가 어떻게 세계사에 영향을 미쳤는지 방대한 전방위의 기록을 탁월한 필력으로 엮어낸다. 또한 언어학, 천문학, 역사학, 지리학을 넘나드는 접근을 통해, 익숙한 동서남북 개념 하나로 인류 문명 전체를 관통한다. 결국 방위는 언어와 문화, 권력이 만든 세계의 틀이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을 기준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다. 세계사와 함께 지식의 융합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