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비상사태! 티셔츠가 머리에 껴서 도대체 벗겨질 생각을 안 한다. 엄마가 빨리 목욕하라고 옷 벗으라고 서두르는 통에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다. 이것 참 야단났네...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긴 싫다. 자존심 상하니까.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티셔츠를 뒤집어쓴 채로? 옛날 옛적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공포에 떨었던 그 누군가처럼, 아이는 비장하게 앞날을 모색한다.
목이 말라도 물 한잔 제대로 못 마시겠지. 고양이의 간지럼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어야겠지. 아니, 티셔츠 한 장 못 벗었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옷을 뒤집어쓴 또 다른 아이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비관했다가 낙관했다가 다시 전전긍긍하는 아이의 변덕과 귀여운 망상. 전작 <이게 정말 사과일까?>, <이유가 있어요>의 틀을 깨는 새로운 상상력, 예측불허의 키스처럼 달콤한 짜릿함이 이 그림책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