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소설가)
: 당신은 드러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을 껴안는 분으로서도 표본이었고, 어디에도 휘둘리는 법 없이 굳건한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셨으며, 팔순 가까이 새 작품을 써내시는 것으로 후배들에게 본이 되어주셨습니다.
부디 당신이 가신 곳에서도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기를.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립고 보고 싶어했던 사람들도 어서 만나시길. 그곳에서도 이곳에서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으시길. 매해 새봄이 와서 당신이 살던 아치울의 노란 집 마당에 새싹이 돋고 나무에 움이 트고 꽃들이 만발할 때면 당신도 다시 봄바람으로 오셔서 남은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길.
김애란 (소설가)
: 이따금 나는, 당신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이 나 같다. 생활력 강하고, 이웃을 잘 깔보는 아낙은 내 어머니 같고, 추문과 질투, 경쟁과 온정 속에서 반목과 친목을 되풀이 하는 동네 사람들은 꼭 우리 고향 어른들 같다. 아이들, 청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소설에 일단 등장한 이상 종이 위에서 꾸준히 맥박 소리를 내며 사람답게 군다. 제 역할이 크든 작든, 교양이 많건 적건, 활달하게. ‘생활’을 업신여기지 않는 이들을 건강함으로. 혹은 ‘생활’에 묶여 있는 자들의 비루함으로, 수고롭고, 부끄럽게.
신형철 (문학평론가)
: 훌륭한 소설은 이 세상에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소설이다. 사십여 년의 세월이 그 줄기찬 입증의 과정이었고 그 입증의 성공은 소설가로서 선생이 늘 품고 있었던 자부심의 근거였다. 그럴 수 있기 위해 늘 견지해야 했던 작가로서의 긴장을 말년의 단편들에서도 여전히 목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