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저자)
: 우리는 늘 미래가 멀리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직업, 어떤 공동체, 어떤 게임은 그 미래를 조금 더 빨리 맞는다. 바둑이 그랬다. 『먼저 온 미래』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가장 먼저 들이닥친 풍경을 조용히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바둑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자부심이 무너질 때의 울림, 자신의 세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독자인 우리도 이미 앉아 있다.
장강명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졌던 바로 그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날들(혼란, 분노, 부정, 수용)을 따라간다. 기술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인간의 직관을 무력화할 때, 우리는 ‘인간적인 것’의 정의를 다시 묻게 된다. 장강명은 ‘패배’를 감상적으로 미화하지도 않고, 기술을 무서워하는 반동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무력함 속에서조차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이 책은 하나의 패배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아마도 이 질문이 등장할 때일 것이다. ‘위대한 작품이 하루에 288편씩 나온다면, 그건 여전히 위대한가?’ 바둑판 위에서, 혹은 문학의 세계에서, 그 질문은 똑같이 울린다. 장강명은 알파고와 함께 무너진 것이 단지 실력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폐허 위에 남겨진 아름다움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인간적으로 바라본다. 기술이 능가할 수 없는 유일한 감각이 있다면, 아마 그것일 것이다.